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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면 저 흰색흰색 고층 아파트들은 새 아파트임 브랜뉴~~~

 

 

여기가 내가 130주고 살던 곳이다.

안에는 더 처참하기 그지 없는데, 한국으로 치면 낡은 빌라 3층,4층짜리 엘리베이터 없는 곳.

뭔가 들어가는 입구부터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오는 골동품 단지같은 곳, 인적드물면 공동묘지인줄 착각하게 된다.

그나마 내가 구한 곳은 방2개짜리였는데 이런 컨디션에 방1개짜리 =130도 있으니 절레절레.

아까처럼 새 아파트는 180-200정도이다. 당연히 관리비 별도

 

 

호주 뜨기전에 호주 코로나창궐할까봐 다른나라 입국 전부 막고 호주사람들도 호주 밖으로 못나가게 했다.

심지어 인터스테이트들 간에도 타 지역에서 코로나 생기면 바로 보더 닫아버렸는데 엄청 가혹할정도로 철저해서 솔직히 안전했다.

그러다보니 유학,이민,관광으로 먹고사는 호주에서 유학생을 받지 못하니 집값이 계속 떨어지기 시작했고 새 아파트들도 130정도로 떨어지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대학원을 가려고 생각했고 1년간 렌트를 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호주에서 렌트구하는 곳

지역명 또는 포스트코드를 넣고 방 1개부터 화장실 갯수는 어떻게 언제 들어갈지 설정할 수 있는 탭을 넣고 검색

www.realestate.com.au/rent/in-epping,+nsw+2121%3b/list-1?activeSort=price-asc

진짜 많이 떨어졌다.

케일 프로퍼티 내 전 에이전시였는데 돈 냈는데 안냈다고 두 번내라고 하면서 정말 일처리 똑바로 못하던 담당자가 있었다.

그때 스트레스 엄청 받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한 두푼도 아닌 돈가지고 똑바로 안해서 어찌나 짜증났던지

렌트노티스 내고 주고받은 메일이 10개가 넘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따지지 않으면 아주 호구물렸을...

근데 에핑지역 부동산 매물들을 저 케일프로퍼티가 제일 많이 가지고 있다는게 (오피스도 에핑임... )

 

 

코로나 전이었으면 350은 거뜬히 받았을 곳이 275로 내렸다.

4주 기준 1100불이니

300이상 벌면 나쁜 옵션은 아니다.

게다가 요새는 워홀이 없어서 인력수급도 안되는 시장이라서 투잡,쓰리잡하기 좋은 환경일 것이다.

나는 내 젊을을 갈아마시고 싶지 않았고, 지금 행복하니 됐지만,

 

 

코로나 끝나자마자 호주 입국하실 호주 뉴비분들은

렌트 최대한 싸게싸게 구하시고, 언제나 이메일로 기록 남겨두는거 잊지 마시고

부동산은 다들 자기 이익 우선시하는 이익집단이니 손해안보고 호구안당하려면 기록=증거 남기기가 가장 확실하게 논쟁을 줄여줍니다.

일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한국에서의 내 포지션이 어쨌고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데 이런 과거에 집착하거나 회상하면 돈 못벌고 앞으로 못 나아가는 이민 1세대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저는 그렇게 못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확실히 보상받는 시스템이고 보상받는 나라라서 그 점이 명확해서 좋았습니다. 

 

본인 써티3 시급-30.81 매 7월마다 오름 (물가상승반영) - 회계년도 마감 매 6월 30일/ 7월 1일부터 새로운 회계년도 시작함

혹시라도 주말근무 꿀잡 잡히면 진짜 괜찮게 받습니다. 

한인잡은 권해드리지 않으나, 그래도 15에서는 시작하는 듯 합니다. 세금 안내죠. -> 불법입니다만.. 

성실하게 돈 벌겠다 하면 영어안쓰고도 몸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참 많았습니다... 저는 그걸 못할뿐...

 

 

어느 비오던 날,

일하던 센터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1년 반 뒤에 프리스쿨 담임으로 일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거기서 최선의 선택으로 인한 최대치의 결과물이었을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으로 돌아와서 집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나는 삶의 만족도가 훨씬 높다.

300을 벌어도 150이상이 고정비로 나가면 삶의 퀄리티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민 1세대는 정말 힘들기 짝이없다.

환상만 있던 채로 갔던 나 자신, 후회해

그래서 나에게 호주의 기억은


색깔로 이야기하자면 비오는 날같은 그레이,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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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의 삶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더더욱이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영주권 혹은 이민(같은 맥락이겠지만)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다들 예민하고 정보에 민감하다.

나 역시 친하다고 믿었던 (과거형) 사람들과 하나둘 의견차를 보이며 멀어져갈 때 처음에는 슬펐고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지만,

인간인지라 당연하게 반복되어지는 일이었고, 더이상 마음에 담아두지 않게 되었다.

그저, 순리처럼 사람은 떠나가고 남을 사람은 남으며 내 기대와 예상치와 다르게 흘러가는 건 꼭 사람뿐 만이 아니라 세상만사가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외국으로 처음 떠났을 때처럼 더이상 20대가 아니고 이제 나는 어느덧 서른이 넘었다. 성숙도는 나이에 비례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게 이 정도가지고 세상의 풍파를 겪었다고 하기에 아직, 나의 내공은 적다.

 

아무튼,

오랜만에 호주를 떠나 한국에 돌아온 나는 내 비자를 조회했고 놀랍게도 2040년에 만료되는 비자를 얻었다.

일일이 내 케이스를 여기에 언급하고 싶진 않다. 어떻게 그렇게 된건지를 설명하기에는 내 인생사를 이야기해야하고 그러한 정보를 공유하고 나눌 목적으로 이 글을 작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이런 케이스도 있구나.라는 것 

 

팬데믹이 끝나면 언제든 자유롭게 가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해도 된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에서의 삶이 무척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첫 째, 내가 원하는 일을 원하는 시간에 한다.

조직생활을 굳이 지금 할 이유는 없어서 스스로 돈 버는 방법을 찾았다. 호주에서 혹독하게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한국에서 25년을 산 나로서는 영어가 절대 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다. 외국인들과 소통을 하려면 영어를 하는게 유리하고 편하고 이득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생존기술을 터득했다. 옮겨다니지 않고 집에서 밥벌이 중이다.

물론, 모든 밥벌이는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책임감이 요구되어지는데 이 정도의 책임감도 없이 일 할거라면 그걸 '일'이라고 부르면 안된다. 취미지 그건,

 

 

최근에 유튜브로 편의점 하시다가 요리로 호주이민 넘어가실 계획인 부부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다들 댓글에 한국에서도 이렇게 힘든데 외국생활이 만만치않을거라는 우려의 댓글이 많았고, 

나 역시 외국생활을 짧게나마 (4년 정도) 해 본 사람으로서 절대 녹록지는 않은데, 남자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한국에서도 어느정도 산전수전 겪으며 편하게 일해보지 않았다면 호주는 오히려 기회의 땅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머리쓰면서 편하게 일했고, 내 기준 차일드케어=몸 쓰는 일이다. 한국은 이민자가 많이 없는 단일민족이라 호주에서 느껴본 생경한 감정들이 인종차별적인 것인지 깨닫는데 한 참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설명하기 힘든 특유의 분위기와 융화되지 못하는 기분을 매일 느껴야했기에 내가 호주와 맞지 않는건지 한참을 고민했었다. 그러다보니 연차는 쌓여갔지만 내적 불만 역시 쌓여만 갔다.

나는 그곳에 있었던게 돈이 목적도 아니었기에 3d라고 불리는 일들을 하며 몸을 쓰고 나를 갈아넣으며 내 시간과 돈을 교환하고 싶지 않았다. '돈'과 '영주권'이라는 목표가 뚜렸하다면 웬만한 군대갔다온 남자들은 잘 할 것 이다. 호주인들 자체의 특유의 릴렉스하고 chill한 성격이 있어서 하기 싫어하는 일자리는 다 이민자들이 하고 있고 그게 또 돈이 된다.

 

 

그런 것과 별개로,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노동환경,근로조건,받는 보상의 범위가 남다르니 역시 자리를 잡기까지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대기업의 근로환경이 엄-청 좋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보상은 확실하고 또 한국인이라고 다 들어갈 수 있는것도 아니니. 좋은 일자리는 한정되어있고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건 매한가지인데 외국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멘 땅에 해딩을 해야하기 때문에 

로드맵과 그때그때의  action plan을 잘 짜서 실행해야 한다. 계속 학생비자로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결국 한인잡처럼 세금징수가 되지 않는 불법으로 언더페이의 일을 추가로 할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학생비자라는 조건에서 악덕사업주를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반복되는 악순환,

 

 

쨌든,

내가 경험한 호주는 전혀 환상적이지 않았다.

뭔가가 안되면 빨리 포기하고 나오는 것도 좋다.

나는 35살에 은퇴를 하고 제3국으로 가서 거기서 밥벌이를 옵션으로 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끔, 한다.

앞으로 나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결국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시간과 연결되어 미래의 선택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어떤 것도 헛된 경험이 없다는 믿음으로 매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 뿐이다.

 

 

 

그리고 내가 지난번에 쓴 호주 글에 어떤 분이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관리자가 삭제해서 글을 볼 수 없었는데

아마도 악플이었나?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하는건 상대의 자유도 있고 나의 자유도 있지만 굳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의 블로그에 남을 기분 나쁘게 하는 글을 굳이 또 남기는 건 뭔지, 한가하세요? 정보는 취사선택이고 정보든 의견이든 내 블로그에서 내가 자유롭게 쓰겠다는데. 인터넷 매너를 지켜주세요. 지구에 얼마나 많은 인종이 살고 있나요, 각 자가 다른 생각을 하고있다면 그 생각의 범위는 무척 다양할 겁니다. 이런 생각도 있고 저런 생각도 있고 이런 삶의 방식도 저런 삶의 방식도 있는거니 이해받기 위해 쓰는 글도 아니고 이해시키려고 쓰는 글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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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신디>

 

 

한국에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은게 그러니까 한참 코로나로 전세계가 패닉에 빠져 있을때였을까..

내가 살던 호주 시드니에서도 4월부터 6월까지는 꼼짝없이 락다운으로 인해 집에만 있어야 했다.

다니던 유치원의 일자리가 하나씩 끊기고 알바로 하고 있던 스시가게에서도 더이상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으며

한달에 1500불씩 나가는 집을 정리하고 쉐어하우스로 이사도 가야했다. 모든 것이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어둡고 척박했지만 그날의 나는 하루 하루 눈 앞에 해결해야할 것들을 해내야만 했다. 개인적인 일들로 슬퍼하고 힘들어할 시간도 없이.

 

 

그때의 감정들을 떠올리면, 그렇다.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것도 특권이구나. 라는 것을.

선진국에서의 삶은 겉으로는 반짝이는 금반지처럼 나를 돋보이게 해주던 악세서리였지만 

그 안에서의 나는 천천히 죽어만 갔다.

 

 

호주 영주권, 이민으로 마음을 굳히고 선택을 번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힘들었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었다.

 

 

 

- 거의 마지막 기억인 전 남편과의 나들이.

웃고 있는건지, 울고있는건지 잘 가늠은 되지 않는 정체불명의 표정을 한 채로 있는 코알라처럼

내 삶도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나는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정신적으로 많이 불안했지만 매일 매일 주어진 일들을 처리했고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이겨냈다.

 

 

 

돌아보니 소중한 시간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풍족했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고 하나씩 일 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영어가 대담하게 늘었고 나는 삶에 자신감을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락다운이 해지되고 부터 유학생 친구들, 외국 직장인들과의 모임도 불나방처럼 쏘다녔다.

그렇지만 순간의 헛헛함만 해소될뿐,

사실 즐겁지만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외국생활과 정착, 미래에 대해 더이상 그려지지 않을 때즈음

 

 

 

 

나는 20년 12월 25일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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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또 일하는 가게에서 받아왔다.

며칠전에는 한 박스 가득채워서 초콜렛을 또 받았는데..

솔직히 이런말하기 그렇지만 초콜릿 지겹다... 돈이나 더 가져와라...

 

 

 

 

 

 

 

- 크리스마스 -

새우먹는 전통이 내려져오고 있다고 한다. 2년째...

 

 

 

 

 

 

 

 

어느날 배고파서 미친듯이 먹은 날들,

비빔밥은 우버잇츠로 시켰다.

사이드디쉬까지 18불인데 ㄷㄷ

한인잡에서 일해도 시간당 18불못받는데...ㅠㅠ

근데 너무 극단적인게 집에서 만들어먹지는 못하니깐(할줄모름,재료비도 또이또이일듯) 

근데 또 그만큼 못버니깐 그럼 먹지마 이런거라니, 참

 

 

 

 

 

 

 

 

숙주빠진 쌀국수는 그저 그렇다,

그러나 양은 많다. 남편의 트라우마는 돈이 없었을때 소스없이 먹은 파스타라고 했다. 

나는 그런 트라우마가 있나? 나도 막 통장잔고 몇십센트 남을때도 있었고 풍족하지 않을때가 진짜 더 많지만 그런 트라우마까지는 없는데

아, 진짜 호주에 온 날부터 고생길 시작이었다. 이제 이걸 고생스럽다고 말하기도 지겨울정도가 되어버림

오늘도 하루종일 손님상대하고 오니 상대적으로 그냥 20명 한방에 있는 애기들 보는게 나았나, 싶다가

아니 또 왜 비교대상이 그거임...? 이것도 극과극

시간을 되돌려 한국으로 돌아가서 직장다니면서 살던 그때로 돌아갈래? 라고 물으면 난 진짜 그러고 싶다.

호주에 나오기로 마음 먹은 나. 남편에게 결혼할래?라고 물어본 나.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이다. 그에 대한 댓가가 이렇게나

힘든 삶의 연속 연속이었다니. 피곤하고 머리는 더이상 컴퓨터앞에 앉아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아서 대학때 배운 것들이 무쓸모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직장다운 직장 잡기 위해 5년을 시간, 돈 투자하면서 그렇게 잡은거였는데 아 진짜 여기서 하는 모든 일이 하나도 안 힘든 일이 없었다. 

더 슬픈건 이게 미래와 연결되는 일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나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자가 나오니깐 이 시간들을 그 시간들을 위해서 기다리는거지. 돈 벌면서- 어떤일이든 하면서 라고는 생각하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게 아닌지 불안할때가 거의 90프로였다. 나의 신분이라는 것도 남편과의 결혼으로 만들어진거니 남편이 내가 싫어지면

나는 어떡함..?  

알바만 하는 인생이 불안하고 두렵고 더 넓은 미래를 생각하기엔 내 몸이 너무나 피곤하여 오늘도 이 생각을 멈추고 또 내일 삶의 전선에 나가겠지

진짜 한국에서도 나름 알바만랩이었는데 호주에 와서 그 정점을 찍고 있는 내가 참... 당황스럽군

 

 

 

그래도 시간은 가고 삶은 지속될 것이고

이 시간은 영원하지 않고 유한하니 내 앞에 놓인 삶을 살아가야지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더 쓸 힘도 없네; 매일 매일 일기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

언젠가는 매일 매일 쉽게 돈 벌고, 즐거운 일을 하는 것 같은, 보람된 기분을 느끼며, 살고있는 날도 있겠지.

그런 날들은 이제 다시 인생에 오지 않아! 가 아니라 그런 날이 올지도 몰라!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여서 다행이다.

나의 20대는 진짜 너무 찬란하고 눈부셔서 신이 그걸 질투해서 나를 이곳 외딴 섬으로 유배보낸건지도 몰라....흐윽

지금의 삶은 고통이지만 언젠가 좋은 날 올거야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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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호주로 돌아온 기분은, 아 지겹다. 또 여기네

4주간 한국, 1주일간 태국에서 지내다가 돌아왔지만 나는 사실 아직 다시 일상을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어떻게 벌써 시간이 한 달이 넘어서 흘러간거지?

 

조금 뭔가 이상해진 내 남편

혼자가 더 편한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기어코 이 지겨운 이 곳으로 다시 돌아와버렸다.

비자를 내년에 완전히 받는다는 보장도 없고, 그럼 또 2021년으로 넘어가는데

소름끼치는게 내가 아빠한테 결혼한다고 말하고 5년간 호주 살아야될걸?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냥 너무 많이 생각 안하려고 한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저녁을 만들어주고 (이것도 5주만, 집에서 지낼때는 계속 사먹으러만 다녔는데)

이것도 나 역시 기분이 이상했다.

나 혼자만 먹을거면 한국이든 태국이든 사먹거나 시켜먹으면 되거든

 

 

 

 

 

 캣 그라스가 이만큼 다시 자라났다.

고양이는 내가 낯선지 자꾸 내가 있는 곳으로 오지 않는다.

나는 가족때문에 돌아온건데

뭐야, 서로 데면데면 하고 있다니..

 

 

 

 

 

 

 

 넘넘 싫었지만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을 받고,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이때까지도- 

아아앙아아아아아 왜 이렇게 책임을 많이지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걸까?

나는 서른살일까 아직도 29살일까?

 

 

 

 

 

 

 

 

 

 

 

 마지막에 가서 기어이 먹은 판타리 푸팟뽕커리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거의 다 했다.

하루에 10시간씩 돌아다니면서, 근데 이때 느낀건

되게 다시 오고 싶어했던 곳인데 아무것도 크게 변한게 없었고

살고싶었던 프롬퐁 지역도 그냥 그랬다. 어떤 환상이나 즐거움도 같이 오지 않았다.

그냥 모든게 그저 그랬다. 한국에서도 태국에서도

나는 그냥 어쩌면 호주에 살고있는 내 모습이 싫어서 다른 곳들을 떠올렸고, 그곳에서의 삶을 꿈꾸었던 것 같다.

막상 그 꿈이 현실이 되었을때는 생각만큼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결국엔 다시 호주로 돌아왔다.

사실 호주에 산다고 말하기도 그런데 나는 시드니에서만 살고있으니

시드니가 호주전체라고 말하기고 뭐하고, 그냥 시드니가 싫은건지

아님 뭐가 싫은건지도 이제는 잘모른채로 그냥 살아가야지 생각한다.

우울증은 여전히 지속중이고, 괜찮은척은 할 수 있고 사회생활도 어떻게든 가면을 쓰고 할 수는 있다.

그냥 내 안의 어둠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할때면 어떻게 벗어나는지 모르겠어서 괴롭다.

그러한 정신적은 고통은 쾌락으로도, 아주 많은 돈으로도 해결은 안된다.

물론 돈이 없는건 불편하고 남에게 민폐를 끼치니까 돈은 벌어야겠지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그런것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아직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은채로 다시 와서

아무일 없다는 듯이 연기하고 살아가는 것을 연기하는게 여간 괴로운게 아니랄까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

이런 기분으로도 요리를 하고 일을 가고 결혼생활은 이어질 것이다.

나아지려고 무던히 노력할 생각은 없다.

그냥 일단 제일 먼저 할 일은 정신과상담을 꾸준히 받을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다.

죽고 싶다, 죽으면 편할텐데, 이런 모든 성가신 감정으로부터도 

책임으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은데

이런 생각들과 싸우는게 귀찮고 피곤하다.

내 생각엔 이게 기분장애가 분명한데 왜 한의원에서 지어온 약도 도움이 되지 않는걸까?

그냥 신경안정제가 더 나은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운동장 트렉을 미친듯이 뛰고

잠이나 잘까?

그리고 내일이 오면 가기로 한 일을 가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그냥 그렇게 사는 연습을 해보면 좀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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