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이 있어야 할 곳을 시간에 봉인하기
시침과 분침이 겹쳤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건 멀어지는 걸까. 아니면 가까워지는 중인걸까.
[요요]
'요요'를 읽으면서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요요를 습관적으로 떠올렸다.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직선을 향해 낙하하던 모습과
마치 그런적 없다는 듯이 태평하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마는 이질적인 그 모습에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름마저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요요라는 그 장난감에
김중혁은 바로 내가 어릴적 가지고 놀던 '요요'를 가지고 단편소설을 하나 완성해버렸다.
관계를 부수고 고리를 끊는다고 느끼는 차선재는 무척이나 연민을 느끼게 한 인물이다.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대상이 '시계'였는데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완결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가 끊어질까, 상처를 받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무생물의 시계. 차선재는 시계와 장수영을 동시에 만났다.
방학이 시작되고, 이후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게 장수영은 돌연 편지 한 통만을 남긴채 둘의 관계는 종결된다.
시간은 아무일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흘렀고 차선재는 10년 동안 시계 회사에서 일을 한다. 독립시계제작자가 되기로 한 후 그는 작은 공방 하나를 차리게 되는데 그 시점에서 베를린에 있는 장수영과 다시 연락이 닿는다. 많은 관계들이 그렇겠지만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라는 사이클은 마치, 공식처럼 우리들의 관계에 존재한다. 그러나 차선재와 장수영의 관계는 오래전 보았던 일본애니메이션 초속5센티미터를 떠올리게 했다. 어린시절, 서로가 첫사랑이었던 둘은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각 자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우연히 기차의 플랫폼에서 마주하게 된 두 사람은 기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남자 혼자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영상을 보여준다. 많은 남자들이 보편적으로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초속5센티미터의 남자주인공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는다
여자는 사라지고 없는데'
그러나
김중혁의 소설에 등장하는 '요요'에서 차선재는 장수영과의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다.
"예전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마음껏 웃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시간은 그렇게 자비롭지 않았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한 번 바닥으로 하강하는 요요는 요요의 물성대로라면, 원래의 그 자리로 다시 되돌아와야한다.
낙하와 상승이 반복될때, 요요는 요요로서 남을 수 있기에.
차선재는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지 않는다. 시간은 시간으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두었다.
마치 요요처럼. 서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방식으로 존재한다. 나는 김중혁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지난했던 과거의 인연들을 현재의 기억 속으로 불러보았다. 그러자 마치 장수영이 만들었던 <Time of Cloud>의 영상처럼 과거의 지점들로 돌아가 그 지점에서 하차하는 내가 보였다. 어쩌면 나는 과거와의 '재회'를 원하는 장수영 쪽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문득 차선재의 이런 말이 떠올랐다. "결과를 되짚어 선택을 선택할 수는 없다" 요요처럼 있어야 할 곳에 되돌아오는 것
그것이 나의 기억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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